“언니, 정말 미안한데 다음 주까지만 쓰고 꼭 갚을게.” 가장 친한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저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준 경험이 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고 믿었던 사이였기에, 흔쾌히, 그리고 아무런 서류도 없이 돈을 건넸죠. 하지만 약속했던 ‘다음 주’는 ‘다음 달’이 되었고, 어느새 1년이 지나도록 친구는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보았습니다. 성실하던 한 지인이 사업의 어려움으로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매일같이 쏟아지는 독촉 전화와 협박에 가까운 문자 메시지에 시달리며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개인 간의 돈거래’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깊게 병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호소하거나, 반대로 연락을 피하고 잠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개인 간의 돈거래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엄연한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돈 안 갚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자)은 어떤 합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그리고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채무자)은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지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경험자의 입장에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 ‘차용증’의 중요성
개인 간 돈거래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이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쓰냐”는 그 한마디가, 나중에 서로의 관계를 파탄 내는 가장 큰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차용증은 왜 써야 할까요?
차용증은 ‘내가 상대방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상대방은 이 돈을 언제까지 갚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객관적인 법적 증거입니다.
만약 차용증이 없다면, 나중에 상대방이 “그 돈, 빌린 게 아니라 네가 그냥 준 거잖아(증여)”라고 주장하거나, “갚으려고 했는데 이자를 너무 많이 달라고 해서 못 갚았다”고 발뺌할 때, 내가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제대로 된 차용증 작성법
차용증에는 정해진 양식은 없지만, 법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몇 가지 필수 항목들이 있습니다.
필수 기재 항목 | 상세 내용 | 경험상 조언 |
채권자/채무자 인적사항 |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 반드시 자필로 서명하고, 신분증 사본을 받아두면 더욱 확실합니다. |
원금 | 빌려주는 돈의 총액 (숫자와 한글로 병기) | “금 일천만원정 (₩10,000,000)” 과 같이 위조를 막기 위해 한글로도 기재하세요. |
이자 | 이자율(연 %), 이자 지급 시기 및 방법 | 이자 약정이 없다면, 법정이율(민사 연 5%, 상사 연 6%)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
변제기일 및 방법 | 돈을 갚기로 약속한 날짜 및 상환 방식 | “2026년 12월 31일까지 채권자의 OO은행 계좌로 입금한다” 와 같이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
작성 날짜 및 서명 | 계약서를 작성한 날짜 | 채무자의 도장(인감도장이 아니어도 됨)을 찍거나, 자필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
제가 지인들의 분쟁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차용증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빌리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보호 장치가 된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내가 언제 그렇게 큰돈을 빌렸냐”며 원금 액수를 부풀리거나, 약속하지 않은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악의적인 채권자를 만났을 때, 잘 써둔 차용증 한 장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단계: 감정싸움 대신, ‘내용증명’ 보내기
채무자가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돈을 갚지 않고, 심지어 연락까지 피하기 시작하면 채권자는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감정적으로 “당장 돈 갚아!”라고 소리치거나 협박성 문자를 보내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상환 요구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내용증명이란?
‘내용증명’은 우체국을 통해,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국가(우체국)가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제도입니다.
이 문서 자체에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채무자에게 “나는 이제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법적인 절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강력한 심리적 압박을 주어, 자발적인 변제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내용증명의 법적 효력
더 중요한 것은, 내용증명이 나중에 민사소송으로 갔을 때, 내가 약속된 날짜 이후에도 돈을 갚으라고 정식으로 요구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내용증명 발송은 ‘소멸시효’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개인 간의 대여금 채권은 10년이 지나면 권리가 사라지는데, 내용증명을 보내면 그 시점부터 6개월간 시효가 중단되어 내가 법적 조치를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2단계: 최후의 수단, 민사소송 제기하기
내용증명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묵묵부답이라면, 이제는 정말로 법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지급명령과 민사소송
상대방이 빚 자체를 인정하고 있고, 주소지도 명확하다면, 정식 소송보다 절차가 간편하고 비용도 저렴한 ‘지급명령’ 제도를 먼저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법원이 서류만 검토하여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는 명령을 내려주는 제도죠.
하지만 상대방이 “나는 돈 빌린 적 없다”며 이의를 제기할 것이 확실하다면, 처음부터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소송의 핵심은 ‘증거’
민사소송의 세계에서는 “내 말이 맞다”는 주장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가장 강력한 증거: 차용증 (자필 서명, 인감 날인)
- 차선책: 계좌 이체 내역, 돈을 갚으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대화, 통화 녹취록
- 보조 증거: 돈을 빌려줄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의 증언
제가 지켜본 한 소송에서는, 차용증은 없었지만 “언제까지 꼭 갚을게, 미안하다”는 채무자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채권자가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3단계: 승소 그 이후, 강제집행의 시작
많은 분들이 “소송에서 이기면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시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판결문은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돈을 갚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국가가 확인해준 ‘집행권원’일 뿐, 채무자가 스스로 돈을 주지 않는 한 휴지조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채무자의 재산 찾아내기
소송에서 이긴 채권자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채무자 명의로 된 재산을 합법적으로 찾아내어 ‘강제집행’을 통해 돈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이나 ‘재산조회신청’을 하면, 채무자의 부동산, 예금, 자동차, 주식 등을 합법적으로 조회해볼 수 있습니다.
강제집행의 종류
- 통장 압류: 채무자의 은행 예금을 압류하여, 채무자가 돈을 인출하지 못하게 막고 그 돈을 내가 직접 받아올 수 있습니다.
- 급여 압류: 채무자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그 회사에 통지하여 월급의 일부(보통 1/2)를 회사가 채무자에게 주지 않고 나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 부동산/자동차 경매: 채무자 명의의 아파트나 자동차를 법원 경매에 넘겨, 낙찰된 대금으로 내 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채권자의 법적 조치 단계 |
1단계: 내용증명 발송 (독촉 및 증거 확보) |
2단계: 지급명령 신청 또는 민사소송 제기 (집행권원 확보) |
3단계: 채무자 재산조회 (압류 대상 파악) |
4. 단계: 강제집행 신청 (통장/급여 압류, 부동산 경매 등) |
‘개인돈 안 갚으면’ 감옥에 갈 수도 있나요?
채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순히 돈을 갚지 못하는 것(채무불이행)만으로는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이는 민사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기죄가 성립되는 경우
하지만, 만약 돈을 빌릴 당시부터 ‘갚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속여서 돈을 빌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는 ‘사기죄’라는 명백한 형사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 사기죄 판단 기준:
- 돈을 빌릴 당시, 변제할 능력이나 갚을 의사가 있었는가?
- 돈의 용도를 속이지는 않았는가? (예: “병원비로 쓴다”고 하고 도박 자금으로 쓴 경우)
만약 채권자가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경찰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면, 채무자는 민사 책임과는 별개로 형사 처벌을 받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Q&A)
차용증 없이 계좌이체만 해줬는데, 돈을 받을 수 있나요?
네,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좌이체 내역은 돈이 오고 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여기에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던 문자 메시지나 통화 녹음 등이 더해진다면, 소송에서 충분히 승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돈이 ‘빌려준 돈’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므로, 이체 시 메모란에 ‘대여금’이라고 적어두는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채무자가 재산을 다 숨겨버리면 어떻게 하죠?
만약 채무자가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빼돌리는 ‘사해행위’를 했다면, 채권자는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하여 그 재산을 다시 채무자의 이름으로 원상 복구시킨 뒤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절차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소송 비용은 얼마나 들고, 누가 부담하나요?
소송 비용은 청구하는 금액에 따라 달라지며, 인지대, 송달료,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변호사 보수 등이 포함됩니다. 소송에서 이기면, 이 소송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대방(채무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아무런 재산이 없다면, 소송 비용조차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관계도, 돈도 잃지 않기 위하여
오늘은 개인돈 안 갚으면 어떤 무서운 법적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채권자와 채무자의 입장에서 각각 살펴보았습니다. 이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나면, 설령 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이미 두 사람의 신뢰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나버린 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가장 좋은 해결책은 법정 다툼까지 가기 전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무조건적인 비난 대신, 상환 계획을 다시 세워볼 기회를 주고,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무작정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조금씩이라도 반드시 갚겠다”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